286컴퓨터와 도트프린터

2018년 10월 14일 성주 외삼촌댁에서

1997년 어느 가을 날.

나는 8살이었다.
아빠는 오토바이에 누나와 나를 앉히시고
10분 거리의 할아버지 댁에 갔다.

아빠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앞자리에 앉아,
계기판을 보며 경적을 울리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할아버지 집에 가까워지면, 내리기 싫어서 마음이 초조해지곤 했다.

아빠는 컴퓨터를 켰다.
나는 그 장치의 이름도 몰랐다.
이따금 페르시아 왕자라는 무서운 게임을 할 수 있었던 장치였다.
컴퓨터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내 기억의 범위를 넘어선다.

아빠는 장난치며 놀던 누나와 나를 불러 세웠다.
“어때? 엄마가 좋아할까?”
모니터 화면에 엄마를 위한 생일축하 카드를 보여주셨다.

아빠는 카드가 어떤지 물으셨지만, 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빨리 종이가 나오는 장치의 움직임을 보고 싶었다.
오토바이 계기판을 보며 경적을 울리는 것은
이 도트프린터를 구경하는 것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프린터 옆에 엎드려 양 손등에 턱을 괴고,
생일카드가 나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프린터 윗 부분은 투명한 검은색이었기에 볼거리가 충만했다.
호두까기 병정들처럼 철두철미한 모습은 중독성이 강했다.

종이는 내 마음에서 도망쳐, 순식간에 나와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아빠에게 생떼를 썼다.
“아빠 하나 더 뽑아줘, 집 가다가 잃어버리면 어떡해”

그렇게 2장을 뽑아 오토바이에 올라 탔다.
집에 갈 때는 누나를 앞에 태우셔서
아빠 등에 거머리처럼 붙어 집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엄마가 카드를 받는 장면은 기억에 없다. 그리고,
이 날의 기억이 286컴퓨터와 도트프린터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이후로는
그 장치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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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이 지난 오늘

귀농하신 외삼촌 댁 마당에서 온 가족이 술잔을 기울였고,
외삼촌께서 아빠에 대한 추억을 나누어 주셨다.

가슴 저미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친가, 외가 모든 친척들에게 매년 생일 편지를 쓰셨다는 것,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들은 아빠를 천재로 기억한다는 것,
월급이 80만원이었는데 250만원에 286컴퓨터를 샀다는 것,
프로그래밍 언어인 BASIC과 COBOL의 전문가이셨다는 것.

충격이었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일하시던 종합병원에
아빠가 컴퓨터를 설치하러 가셨다가 눈 맞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전산학과를 나오셨지만 80년대 후반이었으니,
그 당시의 컴퓨터 설치기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는 컴퓨터를 설치하신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만드셔서 프로그램을 설치하셨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1세대 개발자이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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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에 뜨거운 것들을 꾹꾹 눌러담았다.
내가 이렇게 먼 길 돌아, 29살에 개발자가 된 것이
아빠 아들이라서 그랬을까.

286컴퓨터와 도트프린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장치들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아빠의 사치품으로만 여기던 전자기기들이
이제야 오해를 풀고 본래의 의미를 찾았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다 버리거나 잃어버렸다.

286컴퓨터와 도트프린터,
아빠가 피아노 치면서 부른 노래들이 녹음되었던 전자피아노,
1997년에 차안에서 TV를 봤던 아빠의 자동차용 TV,
모니터 화면이 있던 비디오 플레이어,
워크맨과 CD플레이어,
각종 카메라와 오토바이,

엄마 속을 새까맣게 태운 물건들.
얼리어답터 아빠의 철없는 물건들.
이 중 하나라도 간직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조금 더 욕심내서.

계속 살아 계셨다면 어땠을까.
그립다. 가슴 저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