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올 초 내 나이만큼 책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지인들을 만날 때 마다 그들의 인생책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바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는 나보다 못난 사람이 드물어서,
그들이 인생책이라고 여기는 책들은 실패하지 않을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KBS의 PD로 일하다 퇴사하고, 현재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2018년에 나와 함께 사업 팟캐스트도 진행했던 정사장(팟캐스트 닉네임)이 꼽은 인생책이다.

잠깐 팟캐스트 이야기를 해보자면,
2018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백수가 된 대학 동기 세 명이 진행한 사업 팟캐스트였다.
정사장과 지금은 인기 유튜버가 된 김진짜, 그리고 한백수(==나)가 사업가들을 초대해서 인터뷰하는 형식의 팟캐스트였다.
요즘에 유튜버 신사임당이 하는 사업가 인터뷰의 팟캐스트 버전이라고 하면 다름 없다.

국비지원학원을 다니면서 이 팟캐스트를 병행한 덕분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정말 진하게 할 수 있었다.
거의 매 주 다양한 분야의 사업가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시야를 넓힐 수 있었고, 직업관도 더 뚜렷해졌다.
나의 직업관은 돈은 조금 나중에 벌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하는 삶을 먼저 구축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올 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한 가지 직업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절묘한 타이밍에 정사장이 추천해준 인생책이 바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30년 넘게 작가로 살아온 것에 대한 생각이 담긴 책이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즉각적으로 나의 진로를 바꾼다거나 어떤 결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진로를 다시 결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면, 좋은 레퍼런스가 될 책이었다.



밑줄 친 문장들

  1. ‘논픽션’이라는 ‘성역’의 파수꾼 호랑이들의 꼬리를 밞아버린 모양입니다. (p.12)
  2.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신인 작가’들이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져갔습니다. (중략) 소설가의 정원은 한정이 없지만 서점의 공간은 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p.19)
  3. 효율성이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이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p.24)
  4. 인생 설계란 웬만해서는 예정대로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p.34)
  5. ‘좋아하는 일이라면 어쨌든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한다’는 게 내 장점입니다. (p.44)
  6.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 (p.72)
  7. 나는 너무도 개인적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인간 속에는 나 자신의 고유한 비전이 있고 거기에 형태를 부여해나가는 고유한 프로세스가 있습니다. 그 프로세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삶의 방식에서부터 개인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p.78)
  8.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는 말했습니다. ‘원천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p.101)
  9.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정점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p.105)
  10.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p.110)
  11.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combination을 말합니다. (p.125)
  12.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200자 원고지로 계산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은 생기지 않습니다. (p.150)
  13. 건축 현장에 ‘양생’이라는 단계가 있습니다. 제품이나 소재를 ‘재워둔다’는 것입니다. (p.154)
  14. 작품을 써낸 시점에는 틀림없이 그보다 더 잘 쓰는 건 나로서는 못 했을 것이다, 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시점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p.165)
  15.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p.167)
  16.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p.167)
  17.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성을 대할 때와 똑같은 일이지요. (p.168)
  18. 소설을 쓴다는 작업에 관해서 말한다면 나는 하루에 다섯 시간쯤 책상을 마주하고 상당히 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의 강함은 내 안에 천성적으로 갖춰진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획득한 것입니다. (p.190)
  19. 작은 주전자는 금세 물이 끓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금세 식어버립니다. 한편 큰 주전자는 물이 끓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끓은 물은 웬만해서는 식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각각 용도와 본연의 특징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p.209)
  20. ‘나는 무엇 때문에 영어(혹은 특정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하는가’라는 목적의식입니다. 그것이 애매하면 공부는 그냥 ‘고역’이 되어버립니다. (p.212)
  21.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흥미가 있는 일에 대해서는 열심히 철저하게 파고드는 성격입니다. 어중간한 지저멩서 ‘뭐, 됐어’라고 멈춰버리지는 않습니다. 나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합니다. 그러나 흥미를 가질 수 없는 일은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라고 할까,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 어떻게 해봐도 들지 않습니다. 그런 쪽을 딱 잘라버리는 건 예전부터 상당히 확실했습니다. ‘이러저러한 것을 해라’ 하고 외부에서(특히 위에서) 지시하는 일에 관해서는 아무리 노력해봐도 대충대충 넘어가버리게 됩니다. (p.214)
  22.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뭔가 다른 체계에 맡길 수 있게 되면, 세계는 좀 더 입체성과 유연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건 인간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자세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독서를 통해 그것을 배운 것은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습니다. (p.226)
  23. 대체적으로 나 자신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만 의식하면서 썼습니다. (p.259)
  24. 모든 창작 행위에는 많든 적든 스스로를 보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p.260)
  25. 좀 더 팽팽하게 긴장된 환경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프런티어를 개척하고 싶다. 나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 (p.298)
  26.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