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by 로맹 가리(Romain Gary), 1975

저자가 의견을 직접 말하는 책들은 주로 머리로 읽어왔지만,
장편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은 오로지 가슴(?)으로 읽고 감상하는 것이 나의 독서 습관이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문학 작품이라도 그 메시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이야기의 흐름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희열과 (나의 짧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유명한 작품도 오로지 글을 읽는 재미에 집중해서 읽었는데,
나의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런지, 후반부로 갈수록 느껴지는 감정의 농도가 짙어졌다.

부모 없이 자라는 10살(14살)짜리 주인공의
강인한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연약한 내면이 적나라하게 보여질 때면,
“좋은 아빠가 되어야지.”, “딸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선사해줘야지.“라고 다짐하는 나 자신이 거울처럼 비추어졌다.

조리원 침대에 누워, 누런 조명에 기대어 읽어나간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어떤 메시지가 뚜렷하게 떠오르기보다는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짙고 깊은 감정에 휩싸였었다.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니,
온종일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지쳐 잠든 와이프와,
이 세상을 맞이한 것에 큰 감흥이 없다는 듯 곤히 잠든 아이가 보였고,
이 두 존재를 내가 더 크게 품어야겠다는 따스하면서도 조금은 외로운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위대한 문학은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밑줄 친 문장들

  1. 하밀 할아버지는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을 추구해야 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말했다. (p.121)
  2.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은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p.127)
  3.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p.139)
  4. “난 뭘 하기에 너무 어려본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아줌마.”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