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원서 제목은 VIOS KE POLITIA TU ALEXI ZORBA
by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946


이 책은 나의 2020년 프로젝트 중 하나인 내 나이 만큼 책 읽기의 마지막(31번) 책이다.
마지막 책이었는데, 올 해 읽은 31권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이다.

원래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는, 지인들을 만날 때 마다 그들의 인생책을 물어보고 그 책들을 읽고자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지인들을 별로 만나지 못하여 다른 누군가의 인생책을 물어봐야 했다.

다행히 스누라이프에 2020년 4월에 올라온 동문 여러분들의 인생책은 무엇인가요?라는 게시글을 찾을 수 있었고,
총 77개의 댓글 중에 첫 댓글에 달린 <그리스인 조르바>를 바로 인터넷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지루하고 어려운 장편소설일까 걱정했는데 완전히 빠져들어 읽었고, 짙은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조르바라는 사람을 내 머릿 속에 묘사해갔는데, 점차 조르바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를 닮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 말미에 역자의 글을 통해 조르바가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가 실존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2020년은 저물어 가는데 이 책은 행간이 좁고 비교적 두꺼운(480p) 책이어서 처음에는 다소 속도를 내서 읽으려 노력했지만,
곱씹어 볼 깊이있는 내용들이 많아서, 결국 속도는 포기하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면 또 새로울 것 같은 책이다. 강추!



밑줄 친 문장들

  1. 빛줄기는 내친걸음에 카운터까지 뛰어올라 술병을 휘감았다. (p.8)
  2. “내가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 수도 있겠지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 해요. 하려고 해도 안 돼. 할 수가 없어.”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조르바?” “이런, 모르시는군.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p.21)
  3.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p.24)
  4. 나는 뱃머리에 서서 시야에 드러난 기적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버려두었다. (p.26)
  5. 우리는 영혼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다니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승을 실컷 먹이고 마른 목은 포도주로 축여 주었다. (p.56)
  6. 행복을 체험하는 동안에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오직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볼 때에만 우리는 갑자기 -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다. 그러나 이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98)
  7.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들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p.100)
  8. 인간의 영혼이란 어떤 기후, 어떤 침묵, 어떤 고독, 어떤 무리 속에 있는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p.134)
  9.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p.175)
  10. “그럼 조르바, 당신이 책을 써보지 그래요? 세상의 신비를 우리에게 모조리 설명해 주면 그도 좋은 일 아닌가요?” 내가 비꼬았다.
    “왜 안 쓰느냐,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 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르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p.313)
  11. “어서 옷을 입고 칼라를 세우고 넥타이를 맬 일입니다. 표정도 좀 심각하게 지어요! 대가리는 안 달고 있어도 상관없는데, 모자는 제대로 된 걸 써야 한단 말입니다……! 이 미친놈의 세상에서는!” (p.329)
  12.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보다 좀 길 거예요.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중략)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당신한테는 무식이 좀 필요해요. 무식, 아시겠어요? 모든 걸 걸고 도박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머리가 힘이 세니까 항상 그 머리가 당신을 이겨 먹을 거라고요. 인간의 머리란 구멍가게 주인과 같은 거예요. 계속 장부에 적으며 계산을 해요.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아주 좀상스러운 소매상이지요. 가진 걸 몽땅 거는 일은 절대 없고 꼭 예비로 뭘 남겨 둬요. 머리는 줄을 자르지 않아요. 아니, 아니지! 오히려 더 단단히 매달려요, 이 잡것은! 붙잡고 있던 줄을 놓치기라도 하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하다가 완전 끝장나 버려요. 그런데 사람이 이 줄을 끊어 버리지 않으면 산다는 게 무슨 맛이겠어요? 노란 카밀러 맛이지. 멀건 카밀러 차 말이오. 럼주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요. 럼주는 인생을 확 까뒤집어 보게 만드는데!” (p.428)
  13. (역자의 글) 카잔차키스의 이름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위치하는 노른자위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의 하나인 ‘메토이소노’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메토이소노’는 ‘거룩하게 되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다. (중략)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인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p.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