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 출신 개발자의 2021년 회고

이 글은 개인적인 회고록이다. 그래서 독백체
2018년 회고
2019년 회고와,
2020년 회고에 이어,
2021년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다.



1. 토스 페이먼츠

2020년 11월 어느 저녁, 토스 CTO님과 최종 면접을 보고 정확히 30분 뒤에 합격 전화를 받았다.
밀린 독서와 강의 제작, 가족 여행을 위해 입사일을 최대한 뒤로 미루었고,
2021년 2월 1일부터 토스 페이먼츠 코어플랫폼팀 서버 개발자로 출근했다.

1-1. 토스 뽕

좋았다. 회사가 너무 좋았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이럴까? 싶은 인테리어의 사무실과,
전부 무료인 편의점과 사내 카페, 사내 미용실,
64GB 램이 박힌 사치스러운 맥북과, 신청만 하면 그게 얼마짜리든 구매해주는 업무 장비들,
억 소리 나는 스톡옵션, 매달 받는 운동지원비, 통신지원비, 각자에게 제공된 법인카드,
한국에서 이런 회사 문화가 가능하다고? 싶은 업무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최고의 동료들!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이 지원되고,
개발자로서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환경이었다.

토스 내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토스 뽕이라고 표현하지만,
지금 시점에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해봐도 여전히 좋은 회사, 계속 좋아지고 있는 회사다.

1-2. Not for everyone

보통 11시쯤 출근해서 12시 ~ 3시 사이에 퇴근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늦게까지 일하게 되더라.

싱글이었거나, 아이가 없었다면 문제 될 스케줄은 아니었다.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딸바보 아빠에게는 큰 문제였다.

자주 겪은 실제 예시를 들어보자면,

  1. 2시에 퇴근해서 택시 타고 2시 30분에 집 도착
  2. 현관문 여는 소리 & 각종 소음에 아기가 깸
  3. 3시 30분까지 아기 안고 둥가둥가 무릎바운스 시전 와이프는 하루 종일 독박육아 후 기절한 상태
  4. 아기가 잠들면 씻고 4시쯤 취침
  5. 9시쯤 일어나서 출근 준비 30분, 아기 보는 시간 30분
  6. 10시에 출발 11시에 회사 도착
  7. 무한츠쿠요미

이 스케줄도 사실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법카로 택시타고 출근도 가능했으며, 너무 피곤하면 더 늦게 출근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딸바보 아빠에게 생후 1년도 안 된 딸을 매일 30분만 볼 수 있다는 것은..
게다가 월화수목금 혼자 육아하는 와이프의 고통을 생각하면..

아무리 30분에 8만원짜리 카카오블랙을 법카로 탈 수 있는 회사라 해도,
아무리 억~으억~으어억! 소리 나는 주식을 보상받을 수 있다 해도,
어떻게든 시간을 뺏어서 1:1 개인 과외라도 받고 싶은 뛰어난 동료들이 즐비하다 해도,

와이프와 딸이 가장 중요한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1-3. 가면증후군 유발하는 동료들

그럼에도 놓아버리기 아쉬운 회사, 아니 팀이었다.
내가 속했던 팀은 토스페이먼츠의 핵심인 결제 시스템을 개발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토스페이먼츠 내에서도 실력이 검증된 분들이 더 많은 팀이었다.

특히 팀을 이끄셨던 강병훈님, 김재민님, 하태호님은
나는 어디 가서 개발자라고 말하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뛰어난 분들이셨다.

가면증후군이 자연스레 유발되는, 최고의 동료들이 모인 팀!
주니어 개발자로서 이 팀에서 성장하면 왕의귀환챔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콜드 메일로 토스페이먼츠에 대해 질문 주신 분들과 지인 개발자들에게
성장을 원하신다면, 그리고 육아 중이 아니라면 무조건 합류하시라고 조언해드렸다.

1-4. CTO님의 코드 리뷰

사실상 CTO 역할을 하셨던 강병훈님은 1:1 코드 리뷰를 정말 자주, 많이 해주셨다.

코드 리뷰는 1~2시간은 기본이었고, 4시간 이상 진행한 적도 있었다.
병훈님이 내 자리에 오셔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며 "정수님 잠시 코드좀 볼까요? :)" 라고 하시면
'오옷 성장의 기회다!'라고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미팅룸에서 탈곡기 마냥 신나게 털리곤 했다.

병훈님에 의해 나의 th레기 코드가 향기롭게 정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개발자의 길을 포기하고 싶.. 감탄을 너무 많이 해서,
이쯤 되면 감탄할 때 내는 소리도 좀 다양하게 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와~'만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많이 감탄했고, 고정관념이 많이 깨졌다.

병훈님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코드를 작성하시는지, 그 사고 과정을 보고 듣고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당장 몇 시간 전보다 훨씬 나은 개발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에 특히 병훈님의 코드 리뷰가 그립다.
자주 하시던 정수님, 이 코드에서 냄새가 나지 않나요?라는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작성한 코드를 살펴볼 때마다 혼자 중얼거린다.


정수야 냄새가 나지 않니?

1-6. 예정된 퇴사

大 네카라쿠배 시대에 네카라쿠배를 퇴사한 개발자들이 모이는 팀에 어렵게 합류했고,
2020년 회고에서 바라던대로 결제 도메인 서버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5개월 만에 퇴사를 감행했다.

팀에는 육아 때문에 퇴사한다고 말씀드렸는데,
50%는 맞는 말이지만 단지 육아 때문에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토스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자마자 예정된 퇴사였다. 그 이유는,


2. 미국 영주권

2017년에 결혼하면서 신청한 미국 영주권을 4년 만에 받았다.

2-1. 갑자기?

운명의 장난인지,
토스페이먼츠에 입사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갑자기 미국 대사관에서 메일이 왔다.

2017년에 결혼하면서 배우자 영주권을 신청했는데,
보통 총 2년 정도 걸리는 프로세스가 트럼프 반이민 정책코로나 19의 티키타카로 무기한 연기되었고,

2019년 말부터 약 2년 동안 미국 이민국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코로나가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당연히 영주권 프로세스도 계속 연기될 거라 예상하고 토스로 이직한 것이다.

그런데 토스에 출근한 지 한 달 만에, 미국 대사관에서 2년 동안 오지 않던 메일이 온 것이다.
메일 내용은 앞으로 120일 안에 영주권 심사 인터뷰를 볼 것이다. 준비하시라.

뚜둥...

당황스러웠다. 영주권 인터뷰를 통과하면 6개월 내로 미국에 입국해야 하므로
갑자기 2021년 10월에는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2-2. 빨간 종이

그렇다고 회사나 팀에 영주권에 대해 알리기에는,
영주권 인터뷰에서 거절당할 가능성도 꽤 높았기 때문에 섣불리 퇴사를 언급할 수 없었다.
(영주권자인 와이프가 몇 년째 한국에서만 지냈고, 미국 내 거주지가 없었으므로 이민 의사가 없다고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인생의 방향이 확 바뀌었고, 당장 몇개월 뒤에 미국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었다.
우선 개발자가 된 이후에는 영어를 입 밖으로 낼 일이 없었고, 읽기만 지긋지긋하게 읽었지ㅠ
미국 회사들의 4~5시간짜리 코딩 테스트를 통과할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거주할 도시를 정하려면, 내가 다닐 회사가 먼저 정해져야 했기 때문에
미국 회사에 취업한 상태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토스에서는 5개월 만에 퇴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6월 말에 퇴사하고, 7월에 신체검사와 영주권 인터뷰를 보았으며, 다행히 통과!
8월에 드디어 임시 영주권 비자와 일명 빨간종이를 배송받았다.


(이 빨간 종이를 보기 위해 지난 4년간 미국 이민국과 진흙탕 싸움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육아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와 코딩테스트 준비를 시작했고,
10월에 미국에 들어가서 그린카드(영주권)를 받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또다시 한 달 만에 계획이 수정되었다. 그 이유는 저 아래에 설명한다

비록 갑작스러운 진행으로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경험했지만,
지난 4년간 변호사 없이 영주권 프로세스를 직접 진행하면서 겪은 우여곡절이 빛을 보게 되어 후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도전하고, 더 고생하자는 삶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서 기뻤다.

2-3. 미국에 가려는 이유

물론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사는 게 가장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9년(와이프), 1년(나)을 미국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어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 라이프 스타일에 미국이 잘 맞는다는 것을 이미 아는 상태였다.
무작정 미국이 좋아 보여서, 혹은 한국이 싫거나 도피하고 싶어서 미국에 가려는 것이 아니다.

가령, 와이프와 나는 여행을 가더라도 주말에는 절대 가지 않고,
사람이 없을 평일에, 미세먼지가 없는 날, 그리고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해변으로 여행을 간다.


(처음 발견한 이후로 4년째 가고 있는 동해의 어느 사람 없는 해변)

미국은 미세먼지가 없고, 사람 밀집도가 낮으며, 해변에 가까운 대도시가 많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연차를 쓰고 평일에 여행을 떠나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미국에서는 일상으로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운동들(서핑, 수영, 골프, 테니스)도 미국에서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우리에게는 한국 아파트보다 미국 주택이 더 잘 맞았다. 맞는 것 != 좋은 것

맑은 하늘우리만의 공간, 가까운 바다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미국에서 살아보고자 한다.


3. 둘째는 아들!

와이프가 둘째를 임신!

토스에서 퇴사할 무렵, 나의 원기가 회복되었는지 ㅋㅋ;
와이프가 둘째를 임신했다! 둘째는 아들! 첫째 딸 + 둘째 아들

딸과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아직 난 철부지인데
이미 딸 덕분에 너무나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아들까지 와준다니, 더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를 낳아 본 부모는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건강하게 나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미국 입국 시기를 2022년 하반기로 미루게 되었다.
와이프가 한국 병원에서 출산을 원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2022년 3월 출산 예정)

이제 나는 한국 회사에 다시 취업하기도 애매했고, (1년도 못 다니고 미국에 가니까)
한국에서 미국 회사에 취업하려면,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미국 시각에 맞춰 일해야 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2021년에 미국에 바로 가는 게 더 좋았다. 하지만,

출산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일을 하는 와이프의 의견을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연말까지는 백수 상태로 육아에 집중하면서, 미국 회사 취업 준비를 조금씩 할 예정이었다.
올해는 정말 인생의 방향이 급격하게 홱홱! 바뀐 것 같다.


4. 잠깐의 방황

개발자가 아닌 다른 일을 고민한 날들의 기록

4-1. 카페 창업 도전기

5월 말쯤, 이디야커피 카페를 차린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회사에 다니면서 직원들을 채용해서 카페를 운영했는데, 코로나 상황임에도 월 손익이 꽤 높았다.
나도 오래전부터 장사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구미가 확 당겼다.

어머니가 장사를 오래 하셔서 장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알지만,
이 세상 모든 비즈니스의 본질은 결국 장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기 위해 그다음 주에 바로 본사를 찾아가서 창업설명회를 들었고,
3일 뒤에 점포개발팀에서 내가 신청한 안양 지역에 점포 자리 한 군데를 소개해주었다.
소개받은 날 바로 그 동네로 가서 위치를 살펴보고, 부동산에 들어가 그 자리의 히스토리도 여쭈어보고,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마주치는 분들에게 이것저것 인터뷰하면서 정보를 모았다.

"평소에 커피 마시러 어디로 가시냐"
"다니시는 카페에 만족하시냐, 커피 맛이나 매장에 불편한 점 없으시냐"
"동네에 들어왔으면 하는 프렌차이즈 카페 있으시냐"
"저 자리에 이디야커피를 차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몇 시간 동안 가게 근처를 지나가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대부분 처음에는 나를 사이비 종교인 또는 벌레 보듯이 보시며 경계하셨고, 아예 무시하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계셨다.


(이 중 하나로 보셨겠구나)

하지만 내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어떤 절박함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에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질문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것들이 너무나 쉽게 느껴졌다.

자리는 좋아 보였다. 항아리 상권에 주변에 프렌차이즈 카페도 없고,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배후 세대가 충분하고 학교 2개가 근처에 있었으며,
소개받은 자리 외에 다른 상가들은 평수가 작아서 경쟁 업체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이제 주변 아파트들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변 카페들의 일 매출을 확인하면
대략적인 예상 매출을 뽑아서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부터 2주 동안, 매일 그 동네를 찾아가 주변 카페의 매출과 동네 주민들의 동선을 파악했다.

주변 카페의 매출 확인은 직접 결제하고 받은 영수증으로 할 수 있었다. 찍힌 영수증 번호가 그 시간까지의 총 결제 건수
낮 시간에는 어머니께 직접 가서 결제하시기를 부탁드려 이 상권의 점심 시간 매출을 계산하고,
퇴근하면 바로 동네로 가서 주변 카페들의 마감 시간에 영수증 번호를 보고 총 일매출을 계산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에 약 3개월간 진행하던 개발 건을 성공적으로 배포한 상태라
약 2주간은 토스에서 마음 편하게 일찍 퇴근(6~7시)하고, 5시간씩 카페 동네에서 머물다가 새벽 1~2시쯤 집으로 향했다.

2주 동안 매일 점심 매출과 일 매출을 계산하고, 요일과 날씨에 따라 매출 변동 추이도 파악했으며,
직접 걸어서 각 아파트에서 동네 밖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동선을 거의 모두 파악했다.
그리고 길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분들을 계속 인터뷰했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로 이 자리에 매장을 차리는 것이 타당한지 사업 타당성 검토 파일을 만들었고,


(사업타당성검토 파일 중 일부)

점포개발팀에 보내 조언을 부탁했더니, "점포개발팀에 바로 합류하셔서 같이 일하셔도 되겠다"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매장 운영에 관한 아이디어들이 스파크 튀듯 계속 떠올랐고,
이 과정을 너무 즐겁고 열정적으로 진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개발자를 그만두고 장사의 길로 들어설까? 이게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은데?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고딩 때 리바이스 카고바지를, 대학생 때 미국산 프로틴 파우더를 떼다 팔아 돈을 번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리고 그 경험들이 재미있었고 결과도 좋았기 때문에,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장사는 언젠가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2주간 검토한 끝에 도전하기로 결심!
은행에서 대출 상담도 받고,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하는 친누나를 데려다가 견적도 뽑아보고,
구청 건축과의 지인을 통해 해당 점포에 불법으로 확장된 공간이 있는지 미리 파악도 해두었다.
미국에 가기 전에 매장을 제대로 안착시키고 싶은 마음에, 모든 일 처리를 빠르게 진행했고 계약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때마침 정부 규제로 은행 대출이 막혀서, 미국에 가져갈 돈까지 투자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다양한 자영업을 오래 해오신 어머니께서 가진 돈을 모두 걸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적극 반대해주셨고,
와이프도 육아 + 회사 + 카페를 병행하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걱정을 많이 해서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카페 창업에 들어갈 뻔한 돈은, 이후에 꼭 필요했던 다른 투자에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고,
내 본성이 이끄는 일이니까 언젠가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기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이제는 어떤 매장을 가도 영수증 번호를 확인하며 평균 일일 매출을 계산해보게 되었고,
프렌차이즈 업계는 어떻게 상권을 분석하고,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지 알게 된 것이 이번 방황에서 얻은 나름의 소득이었다.

4-2. 3년 만에 휴식기

토스에서 퇴사하고 돌이켜보니, 개발자로서 딱 3년(2018년 6월 ~ 2021년 6월) 일하고 휴식기를 갖게 되었다.
6개월을 목표로 쉬는 만큼, 그동안 개발자가 되려고 파닥파닥거리면서 깨진 밸런스를 다시 맞추는 방향으로 일상생활을 설계했다.

  1. 와이프에게 몰빵 되었던 육아 분담 시작
  2. 개발자로 일하면서 소홀했던 운동들 다시 시작 (수영, 골프, 헬스, 스트레칭, 골반교정 등)
  3. 미국 이민 준비 시작 (영어 스피킹, 코딩테스트, 미국 회사 알아보기)
  4. 진로 고민
  5. 독서삼매경

7월부터 백수가 된 나는 와이프와 육아를 함께 하면서,
아침에는 수영장, 딸래미 낮잠 시간에는 골프 연습장 / 헬스장 / 도수치료센터에 다니고,
저녁에는 공부하거나, ㅂ랄 친구들과 만나 스크린골프 치면서 수다 떨고 맥주 한잔하는,
여름 방학 같은, 한여름 밤의 꿀 같은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 인프런에 개발자 취업 가이드 강의 판매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큰 부담 없이 백수 상태를 지속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꿀맛 같았던 4개월을 쉬었다.
그리고 에너지 만땅 된 상태로,


5. 다시 취업

11월 15일부터 새로운 팀에 5번째 팀원으로 합류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100% 원격근무하는 한국의 SaaS 스타트업이다.

5-1. 커리어의 갈림길이 되어준 토스

2018년 6월에 개발자가 된 이후, 개발을 공부하고 개발자로서 성장하는 맛에 취해서,
사람들이 더 알아주는 회사로 이직해서 더 높은 보상을 받고, 더 높이 올라온 것 같은 느낌에 취해서,
나 자신과의 대화에 소홀했다.

특히 딸이 태어난 이후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고, 개발자로서 (외형적으로는) 더 높이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와는 삶의 모습과 방향이 다른 개발자분들이 많았던 토스에 합류한 덕분에,
나 자신과의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왜 개발자가 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5-2. 엔지니어 vs 메이커

내가 개발을 접하게 된 과정은 우연이었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한 이유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능력이 생긴다는 것 때문이었다.
유망한 직업이어서, 복잡한 기술을 다루는 게 좋아서, 남들보다 더 아는 게 좋아서 개발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쌓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래의 목적을 잃고
회사에서 잘 쓰여지기 위한 개발자가 되어 좋은 회사로의 이직을 목표로 노력하는 삶을 지난 3년간 살았다.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다.

  • 회사에서 잘 쓰여질 ‘좋은 도구’ 같은 개발자가 되면, 남는 것(얻는 것 - 잃는 것)은 무엇인가?
    •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가능성 상승? 동료들로부터 받는 인정과 칭찬? 스스로 가지는 뿌듯함?
      •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높은 연봉? 사람들이 더 알아주는 회사? 잘 쌓아 올린 커리어?
          • 높은 연봉은 내 삶의 모습을 바꿀 정도인가?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될 정도인가?
          • 사람들이 더 알아주는 회사에 다니는 것은 나의 행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나?
          • 잘 쌓아 올린 커리어를 링크드인 프로필에 멋지게 담았다고 가정해보자
            • 링크드인 프로필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더 나은 회사로의 이직? 더 높은 보상을 받는 개발자?
      • 내가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의 크기는 다른 욕구에 비해 높은 편인가?
        • 동료들로부터 받는 인정은 내가 일을 하고 얻는 보상 중 가치 순위가 높은 편인가?
      • 스스로 가지는 뿌듯함은, 회사들의 좋은 도구가 되었을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내 커리어가 아닌 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방향은,

엔지니어로서 기술력을 더 쌓고, 더 많은 트래픽을 감당하고 더 다양하고 어려운 장애를 경험하고 극복해서,
현재의 회사, 이직할 회사에서 잘 쓰여질 수 있는 개발자가 되는 것.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사람들이 맞다고 하는 방향이었는데 맹목적으로 따랐던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 인정받고, 실력이 뛰어난 개발자가 되는 것은 백 번, 천 번 옳은 일이고 검증된 실패 방지법이다.
하지만 검증된 실패 방지법을 무작정 따르기 전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선행되었어야 했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 고민한 결과를 2개의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1. 나는 엔지니어(Engineer)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메이커(Maker)가 되고 싶다.
  2. 메이커가 되는 과정에서 엔지니어의 역할도 하겠지만, 훌륭한 도구로서의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5-3. 디스콰이엇 (Disquiet)

7월부터 10월까지, 행복한 육아 대디로 지내던 어느 날
2012년부터 알고 지낸 현솔이가 만든 Disquiet이라는 서비스를 둘러보게 되었다.

현솔이는 내 주변에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친구라
만나서 대화하면 내가 배우는 점이 너무도 많은 동생이었기 때문에,
와이프의 대학 동창이라 알게 된 사이임에도, 와이프보다 내가 더 현솔이를 만나기를 원하고 좋아했었다.

현솔이는 개발을 전공한 것도, 개발자로 일해보지도 않았는데
이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투자까지 받아서 (Disquiet 스토리)
Disquiet은 이제 한국판 ProductHunt로서, 혹은 그 이상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는 서비스가 되었다.

이런 현솔이를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영점 조절도 안 하고 총을 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들고 싶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으면, 그냥 만들어보면 되는 것이었다.

꼭 개발을 배우고, 개발자로 일하고, 좋은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많은 트래픽을 감당해보고, 다양한 장애를 극복해보고, 클린한 코드를 작성할 줄 알아야만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앞서 엔지니어와 메이커를 구분 짓고, 나는 메이커가 되길 원한다고 표명한 근거는
메이커로 살아가는 현솔이, 그리고 이 Disquiet에 자신이 만든 프로덕트를 공유하는 메이커들이었다.

그들은 나처럼 개발자였을 수 있고, 현솔이처럼 디자이너였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아니다. 메이커(Maker)다.

5-4. 5번째 팀원

그렇다고 미국행을 앞두고 갑자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메이커가 되어 한국에서 프로덕트를 만든다?
댓츠노노 그건 사랑하는 가족들 고생시키는 지름길이다.

당장 너무 만들고 싶어서 안달 난 아이디어가 아닌 이상,
원래 하던 일을 하되, 메이커들과 함께 일하는 환경에 놓여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느긋하게 미국 회사 취업을 준비하던 행복한 휴식기를 멈추고,
메이커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미국에 가서도 일할 수 있는 팀을 찾아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네카라쿠배당토야 같은 회사들은 큰 서비스를 만들기 때문에
당연히 메이커가 아닌 엔지니어가 필요한 조직일 테니 이직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유능하고 열정적인 메이커들이 창업한,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였다.

마침 현솔이가 좋게 평가하는 어느 초기 스타트업에서 개발자 채용공고가 올라왔는데,

원격근무가 가능한 미국 회사라는 점에서 우선 관심이 생겼고,
대표님께 직접 메일을 보내서 이것저것 질문했더니 자연스럽게 Zoom 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2시간씩 2번의 면접을 거쳐서 5번째 팀원으로 픽셀릭에 합류했다. 레쓰기릿!


6. 픽셀릭

5번의 피벗 끝에 Relate(B2B SaaS)을 개발 중인 픽셀릭에 합류했다.
픽셀릭 채용 페이지

6-1.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한 이유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은 안정적이고 복지가 좋은 회사에 합류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나는 스타트업에 합류했고, 심지어 초기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이유를 간단히 나열하자면,

  1. 미국에 가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미국 회사
  2. 엔지니어가 아닌 메이커로 일할 수 있는 회사
  3. 기존 팀원들의 Excellence
  4. 육아하면서도 일할 수 있는 100% 원격 근무 +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5. 토스에서보다 더 높아진 연봉 + % 지분

그래도 회사 선택은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합류를 고민하던 때에
배민 개발자가 5인 미만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이유
이 영상을 보고 현재 4명이 있는 팀에 조인하는 것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6-2. 개발자 커리어는?

지금까지는 선임자들이 이미 세팅해둔 환경에서, 레거시를 뜯어고치는 일을 주로 해왔다.
때문에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도 다 할줄 아는 개발자분들도 많다)
즉, 사실상 부품에 가까운 개발자라는 게 항상 고민이었다.

때문에 제품의 퀄리티와 난이도가 조금 낮고, 사용자와 트래픽이 조금 적더라도
내가 직접 이것저것 만들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지고 싶었다.
즉, 개발자로서의 생존력을 높이고 싶었다.

대성당 건축에 참여하는 수백 명 중 한 명이 될 것이냐,
초가집이라도 혼자 지을 줄 아는 개발자가 될 것이냐. 그 차이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

이직 사실을 알렸을 때, 주변에서는 기술 스택이 Ruby on Rails인데 괜찮겠냐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한국의 백엔드/서버 개발자라면 Java와 Spring을 사용해야 취업과 이직에 유리한 것이 명백하다.
때문에 예전 같았으면 Java + Spring이 아닌 기술 스택을 보자마자 지원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대성당 건축에 잘 쓰여질 좋은 도구 같은 개발자가 되기보다,
투박하더라도 직접 초가집을 지을 수 있는 개발자(또는 메이커)가 되고 싶기 때문에 기술 스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 극단적인 기술 스택을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기술이든 사용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대성당 건축이 목표가 아니라면 더더욱 기술 스택보다는 빠른 구현과 검증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전 처음 사용해보는, 그리고 한국 업계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아 취업과 이직에 불리한 Ruby on Rails를 사용하는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술 스택을 사용함으로써 곳곳에서 발동할 함정 카드에는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다. 으느증드르그흤따?

6-3.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픽셀릭은 팀원 중 절반은 미국에서, 나머지는 한국에서 100% 원격 근무로 일한다.
게다가 9시부터 6시까지 원격근무로 일한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장소만 집으로 바뀐 원격 근무가 아니다.
따로 정해진 업무시간 없이, 각자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팀이다.

게다가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비동기(Asynchronous)로 진행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내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 때 하면 된다.
논의할 사항이 있으면 해당 Task에 내용을 남겨두고, 확인하는 쪽에서 업무하는 시간에 답변을 남기는 방식이다.
(물론 급한 상황에서는 바로 슬랙 핑을 날리거나 Zoom 콜을 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드물다)

원격근무를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슬랙 메시지에 집중력을 빼앗길 필요 없이, + 메시지에 빨리 답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집중이 잘 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담 없이,
온전히 맡은 일에 최대한 집중 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다.

물론 다른 직무에서는 이게 큰 효용이 없을 수 있으나, 개발자에게는 정말 최적의 업무 환경이다.
집중해서 개발하는 도중에 누군가 다른 업무에 관해 물어보거나 잡담이 오가는 상황에서,
개발자들이 소비하는 맥락 변경(context switching) 비용을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극단적으로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10분 스크럼 미팅을 제외하면, 내가 아침에 일하든, 오후에 일하든, 밤에 일하든, 새벽에 일하든,
집중이 잘되는 시간에 알아서 일하고, 내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 때 응답해주면 되기 때문에
특히나 나처럼 육아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정말 최적의 업무 환경이 아닐 수 없다.

단점이라면, 집이 너무 좁아서(17평) 거실에서 일하는데,
거실에는 항상 귀여운 방해꾼이 있다는 점.. :)

6-4. 팀원들의 Excellence

초기 스타트업인 만큼, 최종면접은 팀원 전체와의 Zoom 미팅이었다.
팀원들도 나의 블로그나 링크드인 프로필을 확인하고, 나도 팀원들의 행적을 미리 확인한 후에 미팅에 참여했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팀원들과 내가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팀이 중요하고, 팀이 중요한 게 아니라 팀원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팀원 전체와 미팅을 해보고 입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회사에도 나에게도 유익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 전체와의 미팅에서 내가 느낀 첫인상은 아래와 같았다.

  1. 역시 똑똑하고 열정적인 분들이구나.
  2. 삶의 가치관이 나와 비슷한 분들이구나.
  3. 이분들이랑 같이 일하면 즐거울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같이 일해보니 느낀 점은 아래와 같다.

  1. 이미 5번이나 피벗 한 팀답게, 이 사람들 정말 사업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구나.
  2. 이 배가 어디로 가든 믿고 따라가도 되겠다.
  3. 투자사들이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는 이유를 알겠다.
  4. 내가 더 기여하고 싶은데, 역량을 빨리 더 키워야겠다.

특히 팀원들이 전략을 세우고, 영업하고, 마케팅하고, 성장 방향을 찾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니
이 팀과 이 제품은 성공하겠다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고, 이 팀에서 만드는 제품과 같이 성장해보고자 한다.


7. 32살에 32권 읽기

작년부터 시작한 내 나이만큼 책 읽기 프로젝트를 다행히 올해도 마무리했다.
토스에 다니던 5개월 동안 책을 2권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7개월 동안 30권의 책을 읽어야 해서 조금 많이 힘들었다.

가장 좋았던 책 1권을 꼽자면, 주저 없이 <예언자>를 꼽을 것이다.
읽고 좋았던 책들은 이 블로그에 리뷰를 남겨두었다.


8. 맺으며

2021년에는 유난히 삶의 방향과 속도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1년에 한 번만 일어나도 큰 사건들이 1년 내내 연달아 일어나면서,
진인사대천명을 마음에 품고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에 바빴던 한 해였다.

2021년 연말 회고를 쓰고 보니,
회고의 제목은 체대 출신 개발자의 회고인데 개발자로서의 성장 스토리가 주된 내용이 아니라,
내가 올해 했던 생각과 행동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정리하는 글이 된 것 같다.

그만큼 나의 직업보다 나의 역할(가장, 남편, 아빠)이 더 중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하지만,
제목에 낚여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개발자분들에게는 죄송하다.

내년에는 둘째가 태어나고, 미국으로 이주를 계획 중인 만큼,
올해보다 더 역동적인 1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생 찐~~~하게 하겠지. 아자아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