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 출신 개발자의 2022년 회고

이 글은 개인적인 회고록이다. 그래서 독백체
2018년 회고
2019년 회고
2020년 회고
2021년 회고에 이어,
2022년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다.

이번 회고는 올해 내 삶의 4가지 모습(개발자, 이민자, 양육자, 한정수)을 기준으로 작성해보았다.



1. 개발자

올해 내 삶의 4가지 모습(개발자, 이민자, 양육자, 한정수) 중 개발자로서 회고할 것들.

1-1. 다시 되찾은 재미

토스페이먼츠에서 퇴사할 무렵, 직장인 특유의 차라리-편의점에서-알바하는게-더-행복하겠다-상태에 빠졌던 나는
작년 11월에 합류한 픽셀릭에서 Relate을 개발하며 개발의 재미를 되찾았다.

재미를 되찾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라,
<맨먼스 미신>에서 설명한 개발이 즐거운 이유 5가지 중 4가지를 매일 느끼고 있다.

  1. 무언가를 만드는 데서 오는 순전한 즐거움 (ㅇ)
  2. 남에게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데서 오는 즐거움 (ㅇ)
  3.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면서 얻는 즐거움 (ㅇ)
  4. 지속적인 배움에서 오는 즐거움 (ㅇ)
  5. 유연하고 다루기 쉬운 표현 수단으로 작업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 ( ? )

1-2. 2개의 모토(Motto)

그럼 토스에서는 이런 즐거움이 없었나? 아니, 분명 있었다.
하지만 즐거운 상태를 온전하게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토스에 흔히 보이는 인생을 개발에 올인한 것 같은 개발자분들개발은 인생의 여러 기둥 중 하나에 불과한 나를 비교하다 보니
개발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은 느끼지 못하고, 개발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는 옷인지 의심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실체가 없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아래 2개의 모토를 추구한다.

  1. 개발하는 재미를 온전히 느끼는 개발자
  2.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개발자

(1)즐겁게 개발하면서 (2)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면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고 의욕이 솟구쳤다.

요즘에는 새벽 3~4시쯤 아이가 깨면, 아이를 재우고 아침까지 개발을 하기도 한다.
아는 사람은 아는 새벽육아코딩의 맛!

1-3. 인프콘 발표

인프런에서 주최한 개발자 컨퍼런스 INFCON 2022 에서 발표를 했다.

제목은 <실리콘밸리로 떠나는 비전공자의 지난 4년 회고> 였는데,
지난 4년간 재직한 4개의 회사에서 경험했던 것들내가 했던 좋았던 선택들 & 후회되는 선택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처음에 발표자 제안을 받았을 때는 "육아와 이민 준비로 바빠서 불가능합니다ㅠ 😭😭😭"라고 거절했지만,
미국 가기 전에 한국에서의 개발자 커리어를 정리하는 발표도 의미 있지 않겠냐는 인프런 담당자님의 매혹에 걸려 수락했다. 점멸 실패

업무와 육아와 이민 준비로 너무나 바쁜 시기에 발표 준비까지 하려니,
이걸 내가 왜 한다고 했지? 나란 놈은 왜 같은 실수를 미친 듯이 반복하는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떨지 않고 대본을 읽은 발표한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발표가 끝나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질문하러 와주셨는데,

  1. 내 인프런 강의가 개발자 취업에 많은 도움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오신 분들이 많으셨고, 제가 더 감사합니다ㅠ
  2. 출판사와 컨텐츠 회사 직원분들이 제안+명함을 주시러 오셨고, 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ㅠ
  3. 질문하시면서 내가 롤모델이라고 말씀해주신 분들도 많으셔서 잘못 고르셨습니다ㅠ

아, 이거 무언가 잘못되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1-4. YC 합격

Relate 팀이 Y Combinator(이하 YC) S22 배치에 합격했다.

자세한 내막은 <6수 끝에 합격한 Relate 팀의 YC 이야기> 참고

2016년에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진로를 고민중이었다.
이 때 인터넷에 무료로 풀린, 이제는 전설이 된 How to Start a Startup 이라는 스탠포드 대학 강의를 봤고, (Y Combinator 대표가 진행)
나는 이 강의에 취해서, 사업에 도전하다가 개발자가 되었기 때문에 Y Combinator는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였다.

(접기/펼치기) 무역 사업 도전하다가 개발자가 된 내용 요약

나는 이 강의에 취해서, 무역 사업에 본격 도전하려다가 나의 무지함을 깨닫고 무역을 배우기 위해 무역 회사(현대글로비스)에 취업했었다.
그리고 당시 중국 시장에 집중하던 한국 화장품 회사들이 미국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은 것을 보고,
미국 소비자를 위한 한국 화장품 무역 사업을 해보기 위해 퇴사를 감행했다.

우선 미국에서 K beauty 커뮤니티를 만들어 고객을 모은 후 제품 유통을 붙이는 계획을 세웠고,
프리랜서 개발자를 고용해서 커뮤니티 웹사이트 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은 무려 RealKoreanCosmetics.com (ㅋㅋ)

프리랜서 개발자는 비쌌고 당시에 나는 거지였으니, 얼마 못 가서 개발자 없이 내가 직접 개발을 해야만 했다.
단순한 HTML/CSS 변경 수준이었지만, 그렇게 개발의 재미에 빠져서 사업은 접고 개발자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팀이 그 어렵다는 YC 배치에 합격한 것이다. (YC 출신 회사 3000+개 중 한국 회사는 총 13개)
2016년 내 마음에 사업의 불을 지폈던 YC를 6년만에 다시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합류하며 짊어졌던 리스크가 YC 합격을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어서 좋고,
이렇게 급성장하는 회사의 성장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다.

1-5. 실리콘밸리 워크샵

한국/미국 팀원 전체가 처음으로 다 같이 실리콘밸리에 모여 한 달간 워크샵을 진행했다.

San Mateo의 한 저택을 Airbnb로 한 달간 대여해서
모든 팀원들이 함께 먹고자고놀고일하고운동하고여행하고보드게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미국에 이민 온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상황 + 육아 때문에 일주일만 참여했는데,
한 달 내내 함께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을 정도로 육아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1-6. CTO에게 배우는 것들

올해 7월부터 Relate 팀에 CTO로 Will이 합류했다.

Will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개발 관련해서는 물론이고,
개발자의 필수 덕목(?) 중 개발 실력과 함께 항상 언급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인데,
Will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것의 실체를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다. 개발자가 되기 전에는 몇몇 보았다

팀에 백엔드 개발자는 Will과 나뿐이기 때문에 내가 작성하는 모든 th레기 코드가 Will에 의해 리뷰되고,
Will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Will이 합류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Will에게 배우는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Will과의 커뮤니케이션 & 코드 리뷰에서 배우는 것들을 최대한 흡수해서,
나도 시니어 개발자가 되었을 때 Will처럼 개발도, 커뮤니케이션도 잘하고 싶다.


2. 이민자

올해 내 삶의 4가지 모습(개발자, 이민자, 양육자, 한정수) 중 이민자로서 회고할 것들.

2-1. 10년 짜리 계획

미국 이민 계획은 2012년에 시작되었다.

2012년에 군 복무를 마친 나는, 군 복무를 기다려준 전 여친(현 와이프)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이던 전 여친(장모님 딸)의 대학교 어학당(?)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덕에 내가 원한다고 미국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지만,
전 여친(수지 엄마)을 너무 사랑한 철부지였기 때문에, 어머니 등골 브레이커가 되기로 작정했었다.


23살에 셀프 웨딩사진을 찍은 철부지들, 2012

나의 어학연수를 위해, 어머니가 은행 대출을 받으시게 할 계획을 세웠고, 계획적 불효놈
어머니를 설득할 미국 어학연수 계획서(PPT)를 병장 시절에 조금씩 만들어서, 행정병 불효놈
말년 휴가 나온 첫날, 각 잡고 어머니 앞에서 발표했었다. 지능적 불효놈

그렇게 2012년 9월에 어머니께 빌린 돈으로 미국에 가서 1년 4개월간 정말 즐겁게 다양한 경험을 했고,
미국에서의 삶(특히 캘리포니아)이 너무 좋았던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서 미국 이민 계획을 세웠다.

2-2. 10년 만에 미국

2017년에 결혼하며 신청한 미국 영주권을 2021년에 받게 되었고,
2022년 9월에 드디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with 와이프, 수지(2세), 지호(0세), 하루(6세, 스피츠)


박스7 이민백2 캐리어3 백팩3 카시트2 유모차1 하루집1

아기 둘에 강아지까지 데리고 12시간 비행기 타고 오는 이민은 정말 쉽지 않았지만,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사는 삶을 꿈꿔온 덕분인지 힘들기보다는 설레였다. 지호 계속 울어서 비행기에서 뛰어 내릴 뻔


결혼기념일마다 집 앞에서 가족사진 찍기 (5주년)

게다가 다행히도 애들 영주권까지 전부 제대로 나와서
미국 이민자의 최대 숙제인 신분 문제도 말끔히 해결되었고, 이제 여기서 열심히 정착하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2세 미만 아이들은 엄마가 영주권자면 미국 최초 입국 시에 영주권을 받는다. 아빠는 무쓸모

2-3. 최악의 타이밍

그런데 2022년 9월은 미국으로 이민 오기에 가장 나쁜 타이밍이었다.

  • 높은 환율 (이민 시점에 1450원쯤)
  • 높은 집값 (방 2개 월세가 4000불 == 약 580만원)
  • 높은 유가/물가
  • 경기 침체로 인한 IT업계 대량 해고

한국에서의 너무나 안정된 삶을 살다가 미국에 왔는데,
하필 근 10년간 가장 높은 환율, 집값, 물가로 인해 매달 마이너스(버는 돈 < 쓰는 돈)다.

다행히 와이프와 내가 검소한 편이라, 한국에서는 17평에서 애 둘을 키우며 매달 약 800만원씩 저축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모아둔 돈으로 버티고 있지만, 내년부터 첫째 어린이집(저렴한 곳이 150만원 수준)까지 보내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빡세지기 때문에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파워볼 당첨되게 해주세요 🙏

2-4. 얼바인(Irvine)

처음에는 IT회사가 밀집해있는 실리콘밸리(Bay Area)에 자리 잡을 예정이었지만,
지난 몇 년간 실리콘밸리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한 덕분에 가격 대비 거주 환경이 좋지 않았고, (물론 돈 많으면 좋음ㅠㅋ)
Relate 팀은 100% 원격근무를 하기 때문에 꼭 Bay Area에 거주할 필요가 없었다.

와이프와 내가 선호하는 거주지는

  1. 애들 키우기에 안전하고
  2. 바다가 가깝고
  3. 날씨가 좋고
  4.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곳

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San Diego를 알아보다가, LA와 San Diego 사이에 있는 Irvine을 알게 되었다.


2022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Top 10 (동그라미 친 부분에 Irvine이 속한다)

Irvine을 선택한 이유는,

  1.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중 하나
  2. 좋은 해변들이 20~30분 거리
  3. 비교적 신생 계획도시라 깨끗한 환경
  4. 미국의 대표적인 서핑 스팟들이 30분 거리 (평생 할 스포츠 하나만 고르라면 서핑)
  5. 내가 좋아하는 서핑, 테니스, 골프, 수영을 하며 살기에 최적의 환경 (공원, 테니스코트, 수영장, 축구장, 골프 코스가 정말 많음)
  6. 교육에 좋은 환경

사실 Irvine은 미국 이민 3주 전까지도 전혀 모르는 도시였지만,
이제는 내가 꿈꿔온 삶의 모습을 이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처음 미국에 이민 올 때는 '가서 살아보고 힘들면 한국에 돌아와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어떻게든 얼바인 주변에서 평생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가 더 잘 벌어야함


3. 양육자

올해 내 삶의 4가지 모습(개발자, 이민자, 양육자, 한정수) 중 양육자로서 회고할 것들.

3-1. 애 둘 아빠

작년 회고에서 지호 초음파 사진을 올렸었는데,
2022년 3월에 지호가 태어났고, 어느덧 귀염둥이 막내로 훌쩍 자랐다 :)


지호가 태어남으로써 딸과 아들을 모두 가진 👨‍👩‍👧‍👦,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아빠가 되었다 :)

그런데 아이 하나의 육아 난이도가 3 이라면,
아이 둘의 육아 난이도는 33 이었다. 😭

3-2. 육아가 힘든 이유

Sendbird의 한국 대표인 이상희님의 링크드인 포스트에서

육아가 힘든 이유에 대해 쓰신 부분이 공감되었다.

육아에 보조적 참여자가 아닌, 주 양육자가 되어 경험하는 육아는 센드버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7년의 시간 동안 주간 100시간에 육박하는 업무시간 겪은 나에게도 곡소리가 나오는 강도의 노동이었다.
왜 그런지를 곰씹어보면, 육아는 ‘자기 통제 가능성’이 결여된 환경에서, 유의미한 관계 발달과 소통이 불가능한 대상에게 수행하는 활동이며, 자신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보람을 제외하고는 ‘발전과 성취’라는 피드백이 없는 노동이기 때문에 힘겹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이분의 글을 통해서, 이렇게 육아하면서도 유니콘 스타트업을 키워낸 분들도 계시는데,
그동안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라는 자조(自照) 1스푼과
그래, 이런 분들도 육아는 힘들어하시는구나라는 위안 10스푼을 삼켰다.

자라온 환경 탓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 편이기 때문에,
+ 알파를 실행하며 성장을 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육아는 기본적으로 + 알파를 실행할 물리적 시간이 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스트레스가 되곤 했다.

3-3. 시스템 만들기

육아는 끝이 보이지 않는데 성장은 해야겠으니, 이 둘을 병행할 방법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우연히 본 김영한님의 인프런 수강생 10만 명 달성 기념 라이브 방송에서 힌트를 얻었다.

인프런 CTO 이동욱님과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된 라이브에서 사전에 받은 질문들에 답변해주셨는데,

그중 시간 관리에 대한 질문들도 많았다.
이에 영한님은 어떤 목표보다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조언해주셨다. 나는 바로 공감되었다.
회사에 다니고 육아하면서 + 알파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거창한 목표를 정해두고 달려가는 것보다,
매일의 일상에서 + 알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한님은 2년이나 걸린 JPA 책을 쓰는 시점에, 회사에 다니면서 갓 태어난 아이 육아도 했다고 하셨다.
시간이 부족해서 퇴근하고 육아하다가 아이가 11시에 잠들면 새벽 1시까지 책을 쓰고, 점심시간에도 책을 쓰셨다고 한다.
거창한 목표를 두기 보다, 그냥 그 시간이 되면 그 일을 하는 시스템을 만드신 것이다.

나도 나만의 시스템을 찾기 전까지는 내가 목표로 세운 것들을 거의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었다.
일어나면 일을 시작하고, 퇴근하면 육아를 시작하는 일상에서 나의 자유시간이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우선 처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뽀모도로 타이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전보다 수면시간을 줄이거나 육아를 더 적게 한 것은 아니어서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같았지만,
새벽에 일어나서 뽀모도로를 활용하니 아웃풋은 훨씬 좋았고, 이전보다 꾸준함이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물론 미국에 이민 온 이후에는,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으면서 + 둘째가 새벽에 계속 울면서 루틴이 깨졌지만,
둘째가 새벽에 깨는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만큼 내가 + 알파를 실행할 시간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기 때문에 앞으로 육아는 점점 수월해질거라는 희망으로, (착각인가요? 육아 슨배님들?)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라는 생각으로 버텨내고 있다.


4. 한정수

올해 내 삶의 4가지 모습(개발자, 이민자, 양육자, 한정수) 중 한정수로서 회고할 것들.

4-1. 새로운 롤모델

2019년 회고에서 이동욱님과 이종립님을 롤모델로 정하고 따라 하려고 노력했었다.

작년 말 부터는 김재호님을 새로운 롤모델로 정했다.
동욱님과 종립님은 여전히 대단하신 분들이고 2019년에 비해 더 대단해지셨지만,
재호님의 발자취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더 맞다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 Ruby on Rails 7을 검색했다가 (회사에서 Ruby on Rails 사용 중)
재호님 블로그에서 Ruby on Rails 7 글을 보면서 재호님을 알게 되었고, 재호님 블로그 글들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내가 김재호 님에 대해 아는 것들을 나열하자면,

내가 누군가를 롤모델로 정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나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분
  2.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서 나보다 앞서간 분

내가 갑자기 라파엘 나달을 나의 롤모델이라 생각하고 따른다면 그의 열정이나 투지를 본받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와 나는 공통점이 거의 없고, 삶의 방향도 완전 다르기 때문에 그를 롤모델로 정하는 것의 실제 효용이 거의 없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지 나의 롤모델이 아니다.

김재호님을 롤모델로 정한 이유

  • 딸을 키우고 계시고
  • 일을 그만두더라도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하신 점
  •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평일에만 여행을 가시고, 그럴 여유가 있으신 점
  • Ruby on Rails 개발자
  • 축구를 좋아하시고
  • 독서를 즐겨하시고
  • 생각 정리 글을 자주 쓰시고
  • 건물 임대 수익과 어플 수익, 투자 수익 만으로도 충분한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시는 점
  •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중 상당 부분을 이미 이루어내셨다는 점

특히, 개발자라는 기둥만 단단하게 세우는 삶이 아니라,
인생을 지탱하는 여러 기둥을 균형있게 세우는 삶을 사시는 것 같아서 김재호님을 롤모델로 정하고 본받고 싶었다.

4-2. 와이프

올해 애 둘을 육아하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육아의 매운맛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매운맛이 진라면 순한맛 정도라면,
풀타임 육아만 하는 내 와이프는 불닭볶음면 이상의 매운맛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맵찔이라 제일 매운 라면이 뭔지 모른다)

그런데도 와이프는 가장 힘든 본인보다 아이들과 남편을 먼저 챙기고,
본인 삶은 2019년(첫째 임신) 이후로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다.

내가 워낙 + 알파를 못하면 스트레스받는다는 사실을 와이프도 알아서,
와이프는 육아하느라 며칠간 씻지도 못한 상황에서도,
하루에 샤워 2번씩 하는 나놈ㅅㄲ에게 어떻게든 자유시간을 만들어주려고 본인의 자유시간을 희생한다.

그런데도 애 둘 엄마답지 않게 이쁘고 사랑스러운 와이프를 둔 나는, 전생에 멀티버스를 모두 구했으려나..
와이프를 더더욱 행복하게 해줘야겠다고 반성 또 반성, 다짐 또 다짐한다.


2018년(1주년) ~ 2022년(5주년)

와이프와 나는 결혼기념일마다(11월 25일), 그 당시에 사는 집 앞에서 가족 사진을 찍어왔다.

결혼 5년째인 올해의 가족 사진은, 우리가 원하는 가족의 모습을 완성해서 뿌듯한 마음이었는데,
지난 5년간 와이프가 수지/지호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느라 했던 고생들을 생각하면 마냥 뿌듯하게만 볼 수는 없었다.

행복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내가 했던 노력들도 있지만,
내가 해온 노력의 절반은 내 자신의 성취를 위한 것이었을테고, 와이프의 노력이야말로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었다.

내가 이렇게 진지하게 쓰는 이유는, 내일 모레가 와이프 생일이라서
지난 5년간 연말 회고에 남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대해서는 열~심히 썼으면서,
정작 가장 감사한 와이프에 대해서는 쓰지 못한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4-3. 33살에 33권 읽기

2020년부터 시작한 내 나이만큼 책 읽기 프로젝트를 다행히 올해도 마무리했다.

올해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 노력했는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 그 분야에 대한 내 생각이나 감각, 열정이 새롭게 일깨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예전에 자주 듣던 음악을 오랜만에 다시 들으면, 내 마음속 구석에 잠들어있던 그 당시의 감정이 잠시나마 되살아나는 것처럼)

가장 좋았던 책 1권을 꼽자면, 주저 없이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롭고 유익한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5. 맺으며

지난 5년간 쓴 연말 회고를 전부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 5년의 흔적들을 눈으로 만지니,
입가에 미소가 고이기도,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심한 한숨이 쉬어지기도 했다.

어쨌거니 저쨌거니, 많은 말을 써놓았지만
그 뒷면에는 나 올해도 열심히 살았어라며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나의 등을 눈웃음으로 토닥여 주기도,
찌푸린 미간으로 명치를 치기도, 올라간 입꼬리로 어깨를 감싸주기도 했다.

가장 첫 회고(2018년) 마지막 부분에
이 회고는 올챙이 시절의 내가 개구리에게 보내는 편지다라고 쓴 부분이 있다.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나는 개구리가 되었을까?
아직 개구리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급한 마음은 사라졌다.
이제는 나침반을 가진 느낌이다.

언젠가 밤에 혼자 산책을 했는데, 와 나 다 컸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애가 벌써 둘이고, 낯선 미국 땅에 이민까지 와버렸잖아?

이제는 나침반이 다시 고장 나도,
두렵거나 조급해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5년간,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뗏목을 단단하게 조였고, 북극성의 위치를 알았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